오늘날의 여의도가 있기까지 | 공간대조 : 서울역 vs 도쿄역, 킹스크로스역 주간도시 | 週刊都市
여덟 번째 이야기
오늘날의 여의도가 있기까지 | 공간대조 : 서울역 vs 도쿄역, 킹스크로스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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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한강공원에서 바라본 여의도 전경.ⓒweeklycity.stadtup.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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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모래섬이었던 여의도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1960년대 후반, 김수근 건축가가 그린 청사진 속 여의도는 한국의 미래를 상징하는 모더니즘 도시였어요.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로와 하늘을 가르는 보행자 데크, 녹지와 공공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도시가 될 뻔했죠. 하지만 이 꿈은 당시의 가난한 나라라에서 꾸던 원대한 꿈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의해 결국 이루어지지는 못했어요.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여의도는 국회의사당과 증권가로 대표되는 정치·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어요. 동시에 이곳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공론의 장이기도 하죠. 지금의 여의도는 김수근의 설계, 그리고 이를 현실로 옮기던 당시 정부가 전부 예측하고 의도한 공간이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사람들이 적응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도시를 바꾸며 만들어진 모습이죠. 그래서 이 글에서는 여의도라는 공간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려 해요.
도시공간으로서 여의도가 가진 특수성
여의도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과 도시계획의 이상, 그리고 현실이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이죠. 이런 특수성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우선 지리와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여의도는 꽤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여의도는 한강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하중도인데, 원래는 홍수 때마다 잠기던 땅이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국가 관리 목축지로 이용되었고,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는 약 55년간 공항으로 사용되었죠. 1958년 김포공항이 개항한 뒤론 민간 기능은 김포로 이전되었고, 71년 서울공항(성남) 개항 이후엔 공군기지로의 기능도 잃어버렸어요. 여의도에도 새로운 쓰임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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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울의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화는 여의도 개발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어요. 1968년 한강 종합개발 계획에 따라 밤섬을 폭파하고 그 골재로 여의도의 제방(윤중제)을 쌓아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 대규모 택지를 조성했죠. 1971년 발표된 여의도 종합개발계획안은 여의도를 국회의사당과 주요 공공기관이 있는 새로운 도심으로 계획했고, 서울대교(현 마포대교) 준공으로 이러한 계획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어요.
1960년대에 윤중제를 쌓으면서 비로소 개발할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했어요. 여담으로, 윤중제는 제방을 뜻하는 일본어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의 한자 표기를 우리말로 읽은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 방죽이나 섬둑으로 표현해야 올바른 말이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여의도 조성 당시의 표현을 사용할게요.
한강이라는 자연 경계는 여의도를 다른 지역과 분리시켰고, 이런 고립성은 오히려 새로운 도시 실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되었어요. 여의도는 고립과 연결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한강이라는 자연 경계로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지만, 다리들을 통해 도시의 여러 지역과 이어져 있죠. 이런 섬으로서의 특성은 여의도를 하나의 독립된 도시처럼 기능하게 했어요.
또 여의도는 권력과 저항이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이에요.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과 자본을 상징하는 금융가가 있지만, 동시에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는 민주주의의 광장이기도 하죠. 이런 긴장과 갈등이 있어 여의도가 더욱 역동적인 공간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의도의 탄생 : 김수근의 여의도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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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서울시는 건축가 김수근과 그의 팀에게 여의도 개발 계획을 맡겼어요. 이들이 그린 청사진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한국만의 미래 도시를 꿈꾸는 야심 찬 계획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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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꼬르뷔제의 모더니즘 도시 설계 예시.
By SiefkinDR - Own work, CC BY-SA 4.0,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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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팀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Ville Radieuse)나 일본 건축가 단게 겐조의 도쿄 계획 1960 같은 당시 건축, 도시계획 이론에 영감을 받아,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미래 도시를 그려내려고 했어요. 특히 자동차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차들이 막힘없이 달릴 수 있는 도로와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드는 등 세심한 계획을 세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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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림. (2017). 1960 년대 말 김수근의 도시건축에 나타난 인공대지에 관한 연구: 세운상가 및 여의도계획 초기안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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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뻗은 보행자 데크와 차 없는 광장, 푸른 녹지 공간 등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였죠. 물론,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성공하기엔 너무 어려운 자동차 중심의 구조지만 말이죠. 당시엔 기술 발전을 통해 더 나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모더니즘적 이상향이 전문가 사이에서는 흔했어요. 백지부터 시작하는 여의도라는 도시는 그러한 이상향을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어요.
오늘날의 뼈대를 갖추기까지
하지만 모더니즘 여의도는 현실적인 한계에 봉착해 실현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적 한계가 명확하기도 했고, 그리고 여의도 개발과 동시에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재원 역시 많이 부족해졌거든요. 그 대신, 여의도는 당시 개발 주체들이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그리고 현실적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5·16광장의 조성이었어요. 초기 계획상의 소규모 분산형 광장들은 하나의 대규모 중앙광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김수근 건축가 팀이 구상했던 휴먼스케일의 공공공지들은, 대규모 집회와 행사가 가능한 넓은 오픈스페이스로 재편되었죠. 이는 당시 도시설계에서 자주 등장하던 기념비적 공간 개념이 반영된 것으로, 도시의 상징성과 기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수정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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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록원. (n.d.). 제24회 국군의날 기념식, 1972-10-01. 서울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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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성격도 공공 중심에서 민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했어요. 처음에는 시청이나 대법원 같은 중요한 공공기관들이 여의도로 옮겨올 예정이었는데, 이 계획은 무산되었어요. 앞서 언급했듯 재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신 개발된 토지를 판매하는 것으로 재원을 마련했어요. 덕분에 지금 여의도의 상징과도 같은 수 많은 고층건물들이 여의도에 뿌리 내릴수 있게 되었죠.
가장 재미있는 변화는 국회의사당의 돔 구조물이에요. 당초 받았던 국회의사당 공모안들엔 돔이 있는 설계가 없었어요. 하지만 당시 의회 하면 떠오르던 미국 의회의사당에는 돔이 있는데, 우리나라라고 없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설계에 없던 돔을 추가하게 되었죠. 돔을 통해서 우리 국회도 서양의 의사당 건물들처럼 보이면서도 한국적인 문양과 기둥을 더해 민족적 주체성을 드러내려 했어요.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추구하던 근대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요. 서구를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한국만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 했던 거죠.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서양의 건축 양식이 어색하게 섞인 절충주의 건축이라고 평하기도 해요.
하지만 재미있는 건, 이렇게 변질된 계획이 오히려 오늘날 여의도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냈다는 거예요. 거대한 아스팔트 광장은 이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었고,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지어진 금융가는 대한민국 금융 경제의 심장부가 되었죠.
오늘날의 여의도: 상반된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간
오늘날의 여의도는 참 재미있는 공간이에요. 하나의 섬에 너무나 다른 성격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거든요. 이런 특징들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먼저 여의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공간 중 하나예요.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금융가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고층 빌딩들은 한국 경제의 심장박동을 느끼게 해주죠. 국회의사당에서는 나라의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지고, 주변의 방송사들은 매일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바쁜 일상에서도 여의도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기도 해요. 한강공원은 도시 생활에 지친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있죠. 봄이 오면 윤중로(현 여의서로, 여의동로)는 벚꽃 구경을 온 사람들로 가득 차고, 여름이 되면 여의도 한강공원은 수많은 시민들의 피서지가 되죠.
또 여의도는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광장이기도 해요. 국회 앞의 마당과 여의도공원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장소가 되었고, 때로는 크고 작은 집회가 열리면서 민주주의가 숨 쉬는 공간이 되었죠.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생긴 광장이 이제는 자유로운 표현의 장으로 변모한 셈이에요.
이렇게 여의도는 자본과 정치, 일상과 저항, 바쁨과 여유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어요. 여의도를 만든 사람들이 전부 예상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이 된 게 아닐까요?
맺으며: 여의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결국 여의도는 하나의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는 살아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도 여의도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이 부딪치고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특히 흥미로운 건, 여의도가 보여주는 의도하지 않은 변화예요. 애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모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풍성한 의미를 갖게 된 거죠. 여의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도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어요. 도시는 단순히 건축가나 정치인이 그린 청사진대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거죠.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의도의 이런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더 나은 도시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지혜가 아닐까요? 완벽한 유토피아를 꿈꾸기보다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현실적인 도시. 그것이 바로 여의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일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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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합니다 : 공간대조 : 서울역 vs 도쿄역, 킹스크로스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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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시민의 삶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공간이에요. 이번에 소개할 2024 서울시 도시공간정책 국제컨퍼런스는 서울역이라는 공간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12월 12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시청 본관 8층 다목적홀에서 글로벌도시의 새로운 도전, 서울역 공간대개조를 주제로 열린다고 해요.
서울역은 일제강점기 경성역 시절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는 여러 도시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참고하고, 서울역만의 특색을 살린 대안을 모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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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킹스크로스역은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준 사례예요. 19세기 산업혁명기에 지어진 이 낡은 기차역은 2000년대 들어 대대적인 재개발을 거쳐 문화, 상업, 주거가 어우러진 활기찬 도시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특히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접목한 점이 인상적이죠. 도쿄역의 경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도쿄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역사는 대중교통 중심 개발의 모범으로, 고층 빌딩과 공원, 문화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 도시공간으로 발전했어요
서울역 공간대개조는 이러한 해외 사례들의 장점을 참고하면서도, 서울만의 독특한 역사성과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단순히 노후 시설을 개선하는 차원을 넘어, 서울의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계획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거예요.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도시재생을 통해 서울역이 새로운 활력을 얻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12월 12일 서울시청 본관에서 열리는 이번 컨퍼런스는 킹스크로스역과 도쿄역의 재생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역 대개조 프로젝트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에요.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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